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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15 21:35
홈페이지 http://www.trinitydc.net
ㆍ추천: 0  ㆍ조회: 1021      
영화 '동주'를 보고: '시인의 역할과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본 영혼'

영화 '동주'를 본 소감: 암울한 시대의 시인의 역할과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았던 영혼...

지난 주 수요일 연구원 세미나를 마치고 아내와 연구원 멤버분들과 함께 영화 '동주'를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한해 세미나 주제가 '교회를 위한 인문학'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일제시대를 살아갔던 청년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1. 시인인가 의사인가? 대학 진학과 장래 직업에 대해서, 동주의 부모들은 시인보다는 의사를 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말그대로 시인의 역할은 재정적인 힘도 없어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서 두 직업에 대한 단순한 비교나 우월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두 직업 모두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시인의 역할, 나아가 인문학의 역할, 좀더 나아가면 우리 신학과 신앙의 역할입니다. 과연 시와 인문학, 신학과 신앙의 역할을 연약한 것인가, 아니면 영속적인 가치를 제공할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2. 불의의 시대에 시의 기능에 대해서. 친구 몽규는 재능있는 청년이었지만, 당시의 일제 시대의 불의에 대해서 직접적인 항일 전선에 투신하게 됩니다. 반면에 동주는 시와 시인도 역설적으로, 매우 현실적일 수 있음을 알고 '시'를 통해서 그의 견해를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말기에는 몽규와 함께 항일 전선에 참여하고 숨을 거둔다).

물론 영화는 몽규와 동주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다루지는 않은 듯 보입니다. 몽규의 현실참여와 동주의 시적 참여 모두가 주 앞에선 귀한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일제의 불의로 가득한 당대 사회에서, 두 청년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서, 현실참여와 함께 혹시 간과할 수 있는 점, 즉 우리에게 과연 시와 시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먼저 우리는 씨 에스 루이스가 쓴 "전쟁 때의 학문"에 대한 글에 지적했듯이, 전쟁 중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주해야 합니다. 루이스의 저 유명한 비유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두더지는 굴을 파야하고 수탉은 울어야 합니다."

동시에 주목할 것은 시와 인문학, 나아가 신학과 신앙의 중요성입니다. 이것들은 역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약한 듯하지만 어떤 것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린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의 '전복적인 힘' (subversive power)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연약해 보이는 한 청년 시인의 모습을 통해서, 시와 시인, 나아가 인문학과 인문학자, 신학과 신학자, 성도의 역설적인 위대한 힘과 가치를 생각해 봅니다.

3. 우정에 대해서. 현실 참여자요 동주보다 실력있엇던 몽규는 어떤 면에서 자신의 역할과 친구 동주의 재능과 역할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항일의 전선의 현실에 투신하게 되고, 동주는 시인의 삶에 몰두할 것을 권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몽규의 역할이 없었다면, 아마도 동주의 역할은 빛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루이스는 우정이란 '마치 둘이 앞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고, 어거스틴은 우정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두 청년의 우정이 아름다웠듯이, 우리 시대에도 서로를 세우는 아름다운 우정의 모습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4.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던 영혼.' 이 영화가, 현대 헐리우드처럼 거대 자본과 스텍터클한 볼거리를 포기하고, 감독 이준익은, 역설적으로 저예산이요 흑백 영화를 추구했고, 이 전략은 오히려 시인 윤동주의 모습을 더욱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고 주목하는 것이자,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가장 어필한 요인은 분명 일제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갔던 청년 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의 무게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청년 동주는 어둔 현실 가운데서도,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었던,' 어떤 면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전복적인 영혼이요 인생'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인이 시인답게, 시를 쓰되, 그것도 (현실의 땅을 딛고 있지만) 가장 연약해 보일 수 있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 참된 용기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서시'를 읽을 때면, 누구의 말처럼, 첫줄을 읽기가 더욱 부끄럽고, 동시에 청년 동주의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에서)

워싱턴에서 심현찬 드림 (4/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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